브레인스템의 이글루

brainstem.egloos.com

포토로그



스페인 인민전선정부의 내분

1931년에 왕정을 타도하고 수립된 스페인 제2공화국의 대통령과 총리들은 대체로 온건한 성품에 좌, 우 양파의 화해를 추구하는 정치인들이었습니다. 마누엘 아사냐 이디아스 대통령, 카나레스 키로자 총리가 그랬고 라르고 카발레로 총리는 중도우파로부터도 지지를 받았습니다. 1936년 2월 총선에서 대승한 좌파 인민전선(사회당, 공산당, 급진사회당 등 좌파3당으로 구성)도 처음에는 내부 통합 유지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스탈린이 보낸 스페인 주재 OGPU, NKVD 책임자 알렉산드르 오를로프는 레닌주의자 및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숙청하라는 지령을 받고 점차 공산당 내부에 손을 뻗쳐들어갔습니다.

1937년초, 스페인주재 소련대사 로젠베르크는 카발레로 총리에게 중도파 성향의 각료 몇명을 내각에서 축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들 중도파는 인민전선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었고 카발레로는 당연히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때 마침 공산당이 소련의 지원을 받아 사회당을 흡수하려한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오를로프와 로젠베르크는 스페인 공산당의 간부회의에 참석해 카발레로를 총리직에서 축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공산당 서기장 호세 디아스와 공산당원 출신 교육부장관 헤수스 헤르난데스는 오를로프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대부분의 공산당 간부들은 소련 기관원들의 위세에 눌려 카발레로 불신임안 제출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민전선의 중핵인 공산당의 지지를 잃게 된 카발레로는 스스로 사임했습니다. 후임자 프앙 네그린은 중도성향이었으나 소련의 압력에 저항할만한 배짱이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소련의 지시를 받은 공산당에 의해 총리로 추천되었습니다. 네그린은 카발레로처럼 정당 간 역학관계를 조정, 통합하려는 어려운 시도 따위는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불길은 엉뚱한 곳에서 치솟았습니다. 인민전선정부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공화파 군대의 중핵을 이루던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POUM)과 무정부주의자들이 점차 소련의 압력에 쉽게 굴복하는 공산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멕시코에 팔팔하게 살아있는 레온 트로츠키를 추종했으며 1936년에 총살된 지노비에프, 카메네프에게 동정적이었습니다. 1937년 4월 25일 공산당의 주요 지도자 롤란 코르타다가 피살되었습니다. 소련측 오를로프는 이를 POUM과 무정부주의자들의 짓으로 몰아붙였습니다. POUM과 공산당은 각자 민병대, 암살단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내 스페인판 '피의 숙청'이 벌어졌습니다. NKVD는 POUM의 지도자 안드레스 닌 제1서기가 프랑코측과 내통하고 있다는 허위문서와 위조지폐를 만들어내 그를 프랑코의 스파이로 꾸며냈고 그 선전은 먹혀들어갔습니다.

1937년 6월 14일 POUM과 무정부주의자 그룹의 주요 멤버들은 일거에 체포되어 마드리드의 OGPU, NKVD 고문실로 끌려갔습니다. 사회당, 공산당 간부들은 그래도 스탈린처럼 머리가 돌아가지는 않아서 이들의 숙청을 반대하고 롤란 코르타다의 암살에 대한 심층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며 프앙 네그린 총리는 정부각료 전원의 이름으로 안드레스 닌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소련측 인사들에 의해 간단하게 거부되었습니다. 닌은 고문에 굴하지 않았고 내통의 누명을 끝까지 부인했습니다. 결국 그는 엘 파르도 궁전의 정원에서 오를로프에 의해 처형됐습니다. 그리고 1937, 38년 2년간 POUM과 무정부주의자들에 대한 체포와 숙청의 광풍이 몰아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여기에는 외국인 무정부주의자들도 특히 많았는데 트로츠키의 비서관 에르빈 볼프, 오스트리아 사회주의자 쿠르트 란다우, 영국인 통신원 밥 스마일리, 존스홉킨스대학 강사 호세 로블레스 등이 있었습니다. 조지 오웰과 빌리 브란트는 목숨을 건졌고 이때의 경험 덕분에 스탈린에게 엄청난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한편 스탈린은 POUM 및 무정부주의자 숙청이 끝나자 이 숙청에 관련된 하수인들을 제거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공화파 군대와 국제여단에 무기를 공급하던 에이벤 코노발레크는 1938년 5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피살되었으며 루돌프 클레멘트는 세느강에 머리없는 시체로 떠올랐습니다. OGPU 서유럽 담당국장 월터 크리비츠스키는 1938년부터 그 자리를 스스로 떠나 도망다니다 1941년 2월 10일 미국 워싱턴에서 피살됐습니다. OGPU, NKVD 기관원이 아닌 소련 외교관들도 소련으로 귀환 후 대거 처형됐습니다. 스페인주재대사 로젠베르크, 바르셀로나 총영사 안드레이 오프센코, 스페인의 코민테른 선전책임자 윌리 뮌첸베르크와 오토 카츠, 프라우다의 스페인 특파원 미하일 콜트초프 등이 그들이었습니다. 정작 POUM 학살을 주도한 오를로프는 해외주재 소련기관원을 통해 스탈린에게 "나를 죽이면 소련측이 스페인에서 저지른 갖은 비행은 모두 책으로 출판되어 전세계에 퍼질 것이다"라고 협박했습니다. 이 협박은 그대로 통해서 스탈린은 살아있는 동안 오를로프에게 손을 대지 못했고, 그는 스탈린 사후에 스페인에서 자신과 소련기관이 저지른 일을 책으로 낼수 있었습니다. 오를로프의 회고록은 다큐멘터리의 거장 켄 로치 감독의 '랜드 앤 프리덤' 제작에도 반영됐습니다.